어머니의 밥상 [김남주]
예나 이제나
어머니 밥상은 매한가지다
묵은 배추김치에
멸치 두세 마리 가라앉은 된장국에
젓갈에 마늘장아찌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리밥 대신 쌀밥이다
어머니 살기 좋아졌지요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모든 기계가 척척 심어주고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만 씌워주면
오뉴월 땡볕에 진종일 콩밭에 나앉아
그놈의 김을 매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나 짐짓 물어보는 나의 물음에
어머니의 대답은 시큰둥하다
좋아지면 뭣한다냐 농사짓고 산다 하면
총각이 시집 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시상인디
이런 시상 난생 처음 살아야 그뿐인 줄 아냐
사람이 죽어도 마을에 상여 멜 장정이 없어야
지난 봄에 아랫말 상돈이 아부지가 죽었는디
저승 가는 사람을 상여소리도 없이
식구끼리 리야까에 싣고 뒷산에 갖다 묻었단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며 사흘 낮 사흘 밤
마을이 온통 초상이고 축제였는디......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하다가
어머니는 숟갈을 놓으시며 한숨을 쉬었다
봄이 와도 이제 들에 나가 씨 뿌릴 맘이 안 생겨야
쭉정이만 날릴 가실마당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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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남주]
망할 자식 몹쓸 자식은
폐허 질러 가로질러
갈 곳으로 가버렸는데
똥값보다 못한 곡식
등지고 가버렸는데
나오자마자 또다시
나오기가 무섭게 가야 할 곳
갈 곳으로 뒷걸음질치며 가버렸는데
아비야
땅을 쳐
가슴팍 치고
하늘 보면 뭣한다냐
발만 동동 구르면 뭣한다냐
남의 자석들은
중핵교만 나오고도
맨써기 군써기 착착 해묵고
콩 심어 팥 심어라
통일벼에 줄모 심어
큰소리 떵떵 치는데
팔 뻗어 턱 밑으로
삿대질 팡팡 해쌓는디
아비야
확확 숨통 터지는
논바닥을 기다니면
보람도 없이 뽁뽁
논바닥을 허물면 뭣한다냐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김남주 유고시집) / 창비, 1995.
.......
남의 자석들은 중학교도 못갔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더 이상 말씀을 안하시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납니다. 시골에서 그것도 농사를 지으면서 소를 기르면서 늘 진사가문의 영광을 마음에 품으셨던 아버지. 시어머님과 시숙들과 시누이들을 보필하랴 시동생의 갖은 기행 앞에서도 항상 종부로의 몸가짐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 7남매를 두었지만 끝내 오늘, 직접 생화를 가슴에 꽂지 못하셨을 부모님.
아침 일찍 전화로 미안함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하는데 삶은 그것을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기만 합니다.
그 망할 놈의 미국 쇠고기 개방에 소값 떨어져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들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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