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첫 [김혜순]

초록여신 2008. 4. 10. 18:15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에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 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 당신의 첫 / 문학과지성사, 2008. 3. 28.

 

 

 

 

.......

시인의 말

 

몸 안팎에 떠도는 음악을

글자들로 바꾸는 일은 늘 구차했지만

부재의 떠도는 이미지 대륙을

두드리는 일은 늘 무모했지만

 

이번 시집에선 랩 음악이거나 음정 음악이나

낮은 톤의 플로우 창법으로 부르면 어떨까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락 불문 마구 뒤섞어버렸다.

 

몸 안팎의 노래에 한 세상 사로잡혀 살다가

그 나라로 가버린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치겠다고 하면

받을라나?

 

시마에 머리채가 걸려서

터널인지 갯벌인지

여기까지 왔다.

 

채석강에 가서 검은 뻘 같은

내 속을 생각했다.

 

시궁창이여!

시의 궁창이여! 만만세여! 방치된 터널이여!

 

 

2008년 봄

      김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