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벨트 구멍 사이로 피곤이 흘러내리는 밤
나는 먼 길을 돌아온 수행자, 다시 신전 앞에 선다
의식은 하루에 두 번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 한다
티셔츠를 바지를 브래지어를 벗고
부재하는 애인의 입술을 벗는다
형벌처럼 매달린 귀걸이와 반지를 풀어놓는다
세상에서 제일 얇은 감옥, 스타킹을 돌돌 말아 내리고
팬티를 벗으려다 아참, 화장실에 가서
팽창해 있던 시간의 무게까지 버리고 온다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 무게를 모두 내려놓는 고행이 필요하다
렌즈를 빼려다가 눈이 함께 빠져나왔다
살가죽을 벗어 내리고 내장을
꺼내어 세탁기 속에 던진다, 어머나!
갑자기 내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내친 김에 말도 버린다 (차압당한 심장은 어쩌지?)
두 발 들어가면 가득 차는 신전
나에게 허공 한줌 허용하지 않은 신전
삶이 나를 견뎌낼 수 있는
꼭 그만큼이 나의 무게가 아닌가
모두 벗어던지고 비로소 날씬해진 나는
한 발을 들여 놓으면 십자가의 상징인 양,
눈금이 붉게 날을 세우는 그 체중계 신전에
고해성사를 하듯 가만히
하루를 올려 놓는다.
* 200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신작시 중에서 - 2007년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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