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은 밤이 아니다
밤 아닌 밤이 어디 오늘뿐이랴마는
등불 켜 들고 사람들 떠드는 소리
풍물 소리 개 짖는 소리 밤새 아련히
고샅 휩쓸어 멀어져가던
그 옛날 기억만 귓가에 쟁쟁한
이 밤은 밤이 아니다
연이야!
객지로 떠돌다가
떠돌다가 칠흑같이 어두운 별을 밟고
산모투이를 돌아 어디쯤이라도 오고 있느냐
숨가쁘게 동구 밖 멈춰섰다가
지쳐둔 사립문 틈새로 새나는 불빛 아래
저기, 무너지듯 어머니!
그렇게 부르며 뛰어들 것만 같은데
그러나 아무도 눈물로 달려오지 못하는
이 밤이 또 어찌 밤일 것이냐
행여
뜬눈으로 기다리는 섣달 그믐
무너진 울타리 사이 찬바람만 마을을 휘감고
수수떡 인절미 켜켜이 식어가는데
너희는 또 어디에서 쓴 술잔을 앞에 놓고
떠도는 영혼으로 낯선 거리를
해매이지야
옛 이야기 이어줄 사람 없는
쑥대머리 우북한 무덤 같은 빈집만
여기저기 웅크린 이 밤
섣달 그믐에.
* 바구니 속 감자싸근 시들어가고 / 창작과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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