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굴광성의 기억 [나희덕]

초록여신 2008. 1. 24. 22:25

 

 

 

 

 

 

 

 

 

 

 

너에 관한 기억은

오른쪽으로만 감기는 필름이다

너는 나를 왼쪽 방향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너에 관한 기억은

빛을 향해 뻗어가는 덩굴이다

너는 나를 어둠 속에서만 기억할 것이다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만날 수 없다, 그 엇갈림 때문에

기억은 자꾸 무거워진다

무거움 때문에 한쪽으로만 기운다

 

 

덩굴이 나무를 타고 오르듯

굴광성의 기억은 멀리, 더 멀리 뻗어간다

그 줄기 끝을 돌려놓을 수가 없다

 

 

기억은 점점 희박해지고

희박해지는 만큼 더 질겨진다

기억은 나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간다

나에게는 없는 너에게로

 

 

 

 

 

 

 

* 2008 현대 문학상 수상시집 - 역대 수상시인 근작시 중에서,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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