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게 눈이 부시도록 믿기지 않는
골방의 겨울을 견딘, 개미랑 바퀴랑 구더기
꼬물거리며 기어나와 손차양으로 어지럼을 내는
이 햇살을 누가 가렸다가 풀어 놓았나 이 바람을
누가 삼겼다가 솔솔 날리나 이 징그러운 버짐들을
누가 좀 닦아주지도 않고
다시 맺히는 하늘을 보게 하시고 잎을, 꽃을
퇴락의 스산한 저녁을 보게 한 이 눈에
환장할 웅성거림을 듣게 하시고
늙은 싹뜰과 사산한 애벌레, 실성한 노파까지
어디 한 번 살아 보려고 양지쪽에 기대어 침을 흘리고 있는
이 미칠 것 같은 일장춘몽,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
믿기지 않는 춘몽.
* 야성은 빛나다, 문학동네.
.......
수요일. 늘상 반복되는 일이다. 분리수거. 오늘만, 한다.
그래서 내가 사는 이 아파트는 깨끗하다. 다른 데는 낮에, 저녁에 하는데,
우리 동은 꼭 이른 새벽이다. 피곤하지만, 어찌보면 깨끗하다.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깨끗한 법이니까.
지난 주에도 못 버렸다. 아, 그래서, 잠을 설쳤다.
반바지 차림에, 긴 부츠를 신고서 룰루랄라..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다가서는 살을 에는 바람.
아, 나의 실수!
얼른 이 추위가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벌써 믿기지 않는 춘몽에 빠져서리...
인간이 욕심이 어찌 이리도 이기적일까?
나를 질책하랴, 이 추운 겨울을 질책하랴....
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현실은 겨울이라 춥다.
어찌보면,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살을 에이는 추위와 맞서는 것이리라, 특히. 겨울바람 앞에 서면, 살아있음을 뼈쩌리게 느낀다.
험한 세상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낭만의 바람 정도인가.
마음먹기에 따라, 마음자세에 따라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믿길 수 없는 춘몽이리라.
겨울 속의 춘몽을 꿈꾼다.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이 정도 이기적인 생각조차 안한다면 난 인간이 아니리라.
아, 방안은 따뜻하다. 겨울 속의 춘몽은 방 안에 와 있었구나.
살을 에이는 바람아, 가라. 난 이불 속이 좋다.
(겨울 속의 춘몽 - 이불 속에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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