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절연 [이병률]

초록여신 2007. 12. 26. 18:55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

 

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

 

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

 

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

 

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면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은

 

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게라도 영혼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딱하다 안타깝다 마오

 

한 식경쯤이라도 눈을 뜨고 봐야 삶은 그저 진할 뿐

 

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잘살기를

 

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緣)은 단지 그뿐

 

 

 

 

 

 

 

* 제7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우수추천시인 작품 중에서.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달새 [송찬호]  (0) 2007.12.28
겨울의 여왕 [송찬호]  (0) 2007.12.27
정상 부근 [이영광]  (0) 2007.12.26
난중일기 3 [장경린]  (0) 2007.12.26
방정식 [장경린]  (0) 200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