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정상 부근 [이영광]

초록여신 2007. 12. 26. 18:36

 

 

 

 

 

 

 

 

 

 

 

 

 

눈 녹는 자리,

흰 눈보다 검은 흙이 더

선명하다

바탕색이다

아는 나무도 있고

모르는 나무는 셀 수도 없는

헐떡이는 산길을 올라

몸 없어 헤매는 바람 몇 점을 놓친다

휩쓸린 등뼈의 잡풀들,

제 한 몸 가누는 일로 평생을 나부껴온

헐벗은 자세들이 여기 서식한다

누구나 찾지만 모두가 버리는

폐허에서 보면,

수묵으로 저무는 영동 산간

내란 같은 발밑의 굴뚝 연기들, 그리고

짐승 꼬리처럼 숲으로 말려들어간 길

의혹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만

사라진 길은 사라진 길이다

저 아찔한 내리막 도처에서

무수한 나무들이 꽃과 잎을 피워

다시 하릴없이 미쳐가도,

내가 아는 몇 그루는 꿈쩍도 않고

봄 깊은 날, 검게 그을린 채

끝내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 그늘과 사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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