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지구의 북호텔에서 [박정대]

초록여신 2007. 12. 26. 18:14

 

 

 

 

 

 

 

 

 

 

 

 

ㅡ 새벽에,


너는 잠들고
창문을 열면 겨울 찬바람을 가르며
먼 별을 향해 날아가는 새들,
아직 귀향하지 못한
인공위성들이
밤하늘에서 반짝일 때
나는 밤새도록
지구 여인의 음모를 쓰다듬으며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머나먼 고향의 숲과
그 숲에서 흘러나오던
따스한 바람의 음악에 대하여 생각한다


잠의 기슭으로
고요히 밀려오던 한 바다와
숨결처럼 따스하던
목덜미와
어느 먼 별의 저녁과



ㅡ 아침에,


우편엽서를 사가지고 오면서 잊은 게 있다
복제인간에 관한 진실, 오늘은 너에게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몇 끼니 밥을 굶어도 우리의 일상은 채워진다, 문제는 아이들인 것이다


찬바람 속에 아이들을 서 있게 해서는 안 된다

 


ㅡ 여러 날의 저녁에,


북호텔의 남쪽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여러 날이 흘렀다
남들은 누군가의 육체를 갖기 위하여
이곳에 온다지만
나는 나를 버리기 위하여 이곳에 왔다
자꾸만 저 별에 남겨두고 온
어린 아들이 생각난다
아들이 찰흙으로 만들었던
잠자는 곰도 생각이 난다
나는 그 잠자는 곰을
내 전화기 옆에 두었었다
지금도 그 잠자는 곰을 깨우기 위해
전화벨이 울리고 있을까


북호텔의 남쪽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렁이는 차들을 본다
돌아갈 곳이 없어도 필사적으로 돌아가는
저 거룩하고도 장엄한 지구인들의 歸家,
차가운 유리창에 입김을 뿌려
주석도 없는 황혼의 유서를 쓰면
멀리서
지구를 물고 날아오르는
검은 새 한 마리

 

 

 

 

 

*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