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ㅡ 나무인간 강판권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튼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떨리며 웃음 지었다
ㅡ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 2008 제53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 ㅡ 수상작 중에서,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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