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에
삼진법이 생겼다고 한다
이 손이 소처럼 뭉툭했다면
번잡한 이 삶 얼마나 단순하고 평화로웠겠는가
새의 날개 같았다면
가볍게 떨리는 마음으로도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었을까
내 손도 그 새 세상을 품었구나
낡은 도자기처럼 은은하게 잔금이 가고
푸르렀던 힘줄도
스웨터에서 풀려 나온 실처럼 느슨해진 내 손은
세상을 움켜쥐기보다
누구나 손잡기 쉽게 되었다
이 손 강 같았으면
남원 어느 샛강처럼
둔치를 끼고 느리게 돌아가는 강 같았으면
신발 벗어 들고 생을 건너다
흰 발등 내려다보며 아득해진 마음이여
그 마음 쓰다듬는 얕은 강이여
내 손 그런 강 같았으면
* 토종닭 연구소,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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