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황 인 숙
햇살 아래 졸고 있는
상냥한 눈썹, 한 잎의 풀도
그 뿌리를
어둡고 차가운 흙에
내리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곳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둘
(탄식과 허우적댐으로
떠오르게 하는)
이파리를
떨군다.
나무는 창백한 이마를 숙이고
몽롱히
시선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챙강챙강 부딪히며
깊어지는 낙엽더미
아래에.
_《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문지, 1988)
ᆢ
문학과지성 시인선' 69선.
황인숙 시인의 첫시집으로 기억된다.
시인의 첫시집에서 무언가 어설프지만 그 처음의 뜨거운 열망, 신선함, 순수함 그리고 싱싱함을 읽는다.
아울러,
시사랑에 첫걸음을 했던 나의 그러했던 마음 또한 읽고자 한다.
그 뜨겁고 설레이던 詩세계로의 입문.
시사랑에로의 노크.
그 마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듯이
침묵하는 시간들 속에서도 시들은 숙성되어 익어간다.
나도 우리들도,
우리의 나이들도.
부디
시앞에서 더 겸손하고 겸허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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