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감식안에 대하여 [박용하]

초록여신 2022. 9. 24. 09:29


감식안에 대하여
  박 용 하




아이다호란 영화가 있지
그 영화에
-나는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볼 거야-
그런 기막힌 언어의, 독백의 길이 있지

길이 있는 영화는
끝없이 걸어가는 꿈이 있어
끝없이 산책하는 내부가 있는 한
당신에 관해 건방질 것도 없이 나는 최고의 감식가지

난 나무와 파도의 전문가야,
난 너 앞에서 담배를 태울 때
담배 맛이 가장 좋아,
난 너 앞에서 기후를 말할때
기분이 아주 훌륭해,

무엇을 맛본다는 것
그건 꿈을 씹는 거야
난 당신과 함께
술과 담배와 모래를 맛볼거야
다람쥐와 염소와 하늘과 민들레꽃을 맛볼 거야
여자와 어머니는 맨 마지막에 맛볼 거야
그러나 난, 히로뽕같은 생을 맛볼 거야
수류탄 같은 심장을 맛볼 거야
크레모아 같은 뇌를 맛볼 거야

무엇을 감식한다는 것
가령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  
그건 그대를 최고로 맛볼 줄 안다는 것이지
그대의 자존심을 최고로 지켜준다는 것이지
그대의 오르가슴을 절정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지

난, 너의 가장 뛰어난 감식가야
그게 사랑이지


_《바다로 가는 서른 세 번째 길》(문지,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