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김남극]

초록여신 2017. 2. 12. 10:09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김 남 극










이렇게 한 삼 년 살면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한나절 지나도록 길은 고요해

고라니똥까지 가만가만 말라가고

풀섶을 들추는 바람도 없이

결 따라 밭고랑을 뒤지는 햇살도 하염없이

고요가 고요해


샘물에서 물을 푸듯

내어 맨 염소를 들려다 매듯

어리연꽃 세 송이 지는 동안

지나가는 구름의 족적을 그려보듯

궁금하고 하염없고 먹먹하게

고요는 고요해


목덜미를 쓸어보고

관자놀이를 눌러보고

먼 이국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 구름도 지워보고

앞집 용마루에 걸린 낮달의 타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고요가 고요를 다 먹도록

기다리다가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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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극 시인은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 『유심』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하룻밤 돌매나무 아래서 잤다』가 있다.



 *너무 멀리 왔다 /실천문학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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