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김 남 극
이렇게 한 삼 년 살면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한나절 지나도록 길은 고요해
고라니똥까지 가만가만 말라가고
풀섶을 들추는 바람도 없이
결 따라 밭고랑을 뒤지는 햇살도 하염없이
고요가 고요해
샘물에서 물을 푸듯
내어 맨 염소를 들려다 매듯
어리연꽃 세 송이 지는 동안
지나가는 구름의 족적을 그려보듯
궁금하고 하염없고 먹먹하게
고요는 고요해
목덜미를 쓸어보고
관자놀이를 눌러보고
먼 이국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 구름도 지워보고
앞집 용마루에 걸린 낮달의 타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고요가 고요를 다 먹도록
기다리다가
고요와 살림을 차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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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극 시인은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 『유심』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하룻밤 돌매나무 아래서 잤다』가 있다.
*너무 멀리 왔다 /실천문학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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