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말, 길 [김정란]

초록여신 2015. 9. 14. 10:50

 

말, 길

ㅡ계곡








말이 길을 이루는 것인지

길이 말을 이루는 것인지



아니면 말과 길이 동시에

서로를 규정하고 서로 만들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제각각 따로 가는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본다

미어지는 가슴들 미어졌던 가슴들 위에

포개어져 부드럽게 시간의 물살로

상처를 상처로 달래며

흘러가는 것



상처가 상처로 설명되면서

맥락을 지극히 좁게 가두면서 그래서 사실은 절대적으로 열면서

세계의 말에 이른다는 것

바위는 시대처럼 버티고 있다



그러나 비참의 말들

맥락과 맥락을 드나들며



밤의 신성함을 배웠다 가난 속에서

어느새 미어터져 밀려나면서

시간을 밀어내면서 껴안으면서 다시 밀어내면서



지극한 수동성의 능동성을



물이 된 하늘을

길이 된 말을




*꽃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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