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김명인]

초록여신 2015. 4. 20. 04:50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김 명 인

 

 

 

 

 

 

 

 

졸음기 그득 햇살로 쟁여졌으니

 

이곳도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본 풍경 속이다

 

화단의 자미 늦여름 한낮을 꽃방석 그늘로 펼쳐 놓았네

 

작은 역사는 제 키 높이로 녹슨 기차 한 량 주저앉히고

 

허리 아래쪽만 꽉 깨물고 있다, 정오니까

 

나그네에겐 분별조차 고단하니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몇만 톤 졸음이나 그늘 안쪽에 부려 놓을까?

 

불멸불멸하면서 평생 떠도느라 빚졌으니

 

모로 고개 꺾은 저 승객도 이승이란 낯선 대합실

 

깨어나면 딱딱한 나무 의자쯤으로 여길 것인가

 

 

 

 

ㅡ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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