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일요일 [박지혜]

초록여신 2015. 1. 18. 17:29


일요일

 박 지 혜












 어떤 순간이 정지할 때도 있어. 영원의 정지. 그게 뭔지 잘 몰라도 그런 게 있어. 연인의 잠. 그게 뭔지 잘 몰라도 연인의 잠을 자고 싶어. 죽음으로만 완성되는 사랑이야. 그런 건 없어. 그래도. 모든 그래도가 문제여서 그래도의 여운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시인이 되었나. 매일매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들어갔다. 사라지는 순간들을 붙들고 울고 싶어. 모두 잊어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과 햇빛. 기억과 기억. 모두 잊어야 한다. 저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모종의 두려움을 느끼며 보이지 않은 곳으로 걸어갔다. 푸른 옷을 입고서. 할 말이 없어지도록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었다. 느리거나 보이지 않는 속도로. 모두 잊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헛꿈을 쫓는 나비가 될래. 떨리는 눈빛이 될래. 맹목적인 펭귄이 될래. 까닭 없이 절정을 느끼는 가슴. 무언가 지속하며 무언가 흘려보내며. 오늘의 사랑 오늘의 절망. 모두 잊어야 한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땅이 푹푹 꺼지기도 했다. 정면의 벽이 전진하기도 했다. 그래도. 숨이 멎을 것처럼 웃기도 했다. 너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했다. 새벽마다 새로 쓰는 유서는 없었다. 영원한 언덕. 작고 동그란 언덕에 있었다. 나란히 아름다운 크레인을 보았다. 아름다운 책 다섯 권을 꺼내 다섯의 22페이지를 읽는다. 모두 잊어야 한다고 했다. 잊히지 않는다. 오리야 오리야 괜찮다. 다 괜찮다. 술이나 마시자. 햇빛이 있다.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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