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만종 [김남호]

초록여신 2014. 10. 4. 10:31

 

만종

 김 남 호

 

 

 

 

 

 

 

 

 

둥근 종소리가 저녁 강을 건너오면

어머니는 동그랗게 등을 말고 이름을 쓰네

밀린 숙제를 하듯이 방바닥에 엎드려

이름을 쓰네 연필 끝에 침을 묻혀

오래전에 죽은 형들의 이름을 쓰네

두 살 때 죽은 여섯 살 때 죽은 마흔 일곱에

죽은 형들의 이름을 차례로 쓰네

어쩌자고 저들을 불러오는가, 나는

귀를 틀어막고 종소리를 온몸으로 밀어내네

천 근의 종소리는 그덕도 없고

느릿느릿 강을 건너오고

돌을 갓 지난 형과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형과

오십을 바라보는 형이 차례차례 강을 건너오고

어둠이 출렁이는 방바닥에 엎드려 어머니는

느릿느릿 또 이름 하나를 쓰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침으로 쓰네 나도 처음 보는

내 이름을 쓰네

 

 

ㅡ계간,시작( 201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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