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박새에게 세 들다 [복효근]

초록여신 2014. 7. 6. 08:37

 

박새에게 세 들다

 복 효 근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 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넘어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겁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 이불로

내 안마당도 제 운동장으로

모두 모두 소문내고 등기해놓은 것은 아닐까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참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금낭화 촉 돋는 한때

 

 

 

 

 

*따뜻한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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