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갈라파고스, 서울 [천서봉]

초록여신 2013. 12. 28. 08:15

 

갈라파고스, 서울

 천 서 봉

 

 

 

 

 

 

 

 

 

이정표가, 무성한 갈대처럼 돋아 바람의 향방을 읽어보지만

따라가보면 모두 한곳이다. 화살의 직관을 버리고 고향을 물어보면 사람들,

 

 

다 파도처럼 살았다. 밤을 밀며 가거나 혹은 저기 밀려오는

취객들의 출렁이는 이마 아래 곤한 갈매기, 숨은 그림처럼 아득하다.

 

 

또륵또륵 알등은 모의(謨議)처럼 빛나고, 춥다, 회빛의 거대한 숲이

검은 구름들을 목젖 아래까지 당겨 덮는다.

 

 

온몸이 흰 저녁의 빗줄기가 한바탕 환한 우산꽃들을 몰고 간다.

은밀한 피리 소리가 제 안의 짐승들을 불러내면

철벅거리는 밤의 우듬지에 모여 어른들, 서럽게 알을 슬고

 

 

멧새 부리 같은 당신의 입술은 꾹꾹 낡은 비애를 되씹는다.

비릿하고 촉촉한 슬픔이 유전된다.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

경계에서 피고 진 이곳의 오랜 기원에 관해서는 서로 모른 체하기로 한다.

 

 

변종(變種)의 사이렌 소리가 급히 창밖 도로에 금 긋는다. 놀라 갈라서는,

군상들의 섬 사이를 실뱀처럼 미끄러져 가는 바람, 바람에게 빌린

한 칸의 방에선, 당신도 너무 멀다.

 

 

 

* 서봉氏의 가방(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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