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회전 찻잔 [류인서]

초록여신 2013. 8. 27. 18:02

회전 찻잔

 류 인서

 

 

 

 

 

 

 

 

숨어 놀기 좋은 방이다 마시기 좋은 햇빛이다

우리는 어느새 찻잔, 찻잔 안에서 길을 잃는다

다만 한 잔으로 계량되는 낱몸들

 

 

하나의 잔을 갖는 건 하나의 영토를 가진다는 것?

쉼 없는 노랫소리 퍼내며

햇빛 환한 공원엔 달의 턴테이블이 돌고

 

 

원심분리기 속의 물체처럼 너는 무겁거나 가벼운 몇 개의 너로 나뉘며 멀미

맨 바깥쪽은 물론 구름과 몸 바꾼 거품이리

빵처럼 부풀어 잔 밖으로 넘친다 증발한다

태풍의 눈처럼 퀭한 공기 소용돌이만 남는다

 

 

찻잔 가득 골목

술잔 가득 모래……

우리는 우리가 깨뜨려먹은 몇 개의 잔을 토한다

뒤집힌 치마 같은 술잔

 

 

잔이 돈다 풍경이 둥글어진다 우리는 끝내 둥글어지지 않는다

뿌리라도 내리시나 화초도 아닌 너, 뚜껑 없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잔 밖에다 물끄러미 저를 세워둔 채

 

 

 

 

* 신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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