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이미'라는 말 [김승희]

초록여신 2013. 1. 7. 12:35

'이미'라는 말

 김 승 희

 

 

 

 

 

 

 

 

 

 

 

 

이미라는 말,

그런 것이다

언제 찬란했냐는 뜻

겨울의 눈송이가 다 녹아 스며들었다는 말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란 말은

그런 것이다,

공중에 뜬 리프트 상태에서 추락해 전신에 큰 부상을 입은 발레리나,

노을이 가슴에 내려와

한 사발 가득 목울대부터 채우던 울음,

언제 찬란했냐는 듯

빈 사발에 쓸쓸한 물빛만 맴돌고

벌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기장처럼 뻥뻥 뚫린 가슴 안에 모기는 이미 들어와 있다,

움직일 때마다 모기 소리가 식식거리는 흉곽,

어차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가슴팍 밑으로

이미, 터무니없이,

언제 찬란했냐는 듯

그런데

봄눈 녹아

복수초부처 수선화, 유채꽃, 노루귀, 한계령풀,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개나리, 진달래……

줄을 이어 꽃잔치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덜어내고도 다시 고이는 힘!

이미란 말이다

 

 

 

* 희망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