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김승희]

초록여신 2013. 1. 6. 12:42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

 김 승 희

 

 

 

 

 

 

 

 

 

꽃들이 반짝반짝했는데

그 자리에 가을이 앉아 있다

 

 

꽃이 피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검붉은 씨가 눈망울처럼 맺혀 있다

 

 

희망이라고……

희망은 직진하진 않지만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

 

 

 

* 희망이 외롭다 / 문학동네, 2012. 12. 12.

 

 

 

[시인의 말]

 

 6년 만에 시집을 묶는다. 아홉번째 시집이다.

 부서진 세계  속을 더듬더듬 나아왔다. 수도꼭지를 들고 다닌다고 물이 나오는 게 아니듯 희망을 희망하는 게 너무 외로웠다. 영혼을 지키기 위해선 가끔은 풍자의 편을 들기도 하였다.

 

 폐허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가끔은 말의 에피라니(epipha-ny)를 꿈꾸기도 했다. 신은 시인에게 언어와 언어의 꿈을 주었기에. 결국은 말의 에피파니가 부서진 세계와 영혼의 병을 구원하는 것일까? 거기에 그리움이 있었고, 희망의 빈혈로 너무 아플 때면 우리말을 부여잡고 우리말에 기대어 울어보기도 했다.

 

 간신히, 희망!

 정말 희망은 우리에게 마지막 여권, 뿌리칠 수 없는 종신형인가보다.

 

 2012년 12월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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