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이 규 리
날마다 누가 전화를 걸었다가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섬 하나 보인다)
그 사이 잠깐 동안 그와 내가 공유하는 긴장 속에 꽃잎 같은 숨소리 지나갔다 (섬에 닿는다)
상상은 재빨리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길을 내지만 말하지 못하는 저 사람 (섬에 갇힌다)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저 사람 (섬에서 운다)
익명을 요구하는 사람의 슬픈 허구를 나는 안다 (섬이 된다)
마음속에 갈 수 없는 섬 하나 만들어 놓고 발목이 시린 물결들의 수심은 진보랏빛 용담이다 (섬은 사라진다)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세계사(2004)
…
나의 섬 하나 보인다,
그 섬에 이미 닿았다.
2004년의 그 섬에 갇힌다.
섬에서 울지는 않는다, 웃는다.
그곳은 여전히 나의 섬이다.
가라앉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
영원한 나의 섬이다.
(2004년 9월 2일, 가을의 길목에서 "영풍문고"라는 시집에 적힌 메모 속에서- 초록여신의 잊었던 섬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