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섬 [이규리]

초록여신 2012. 2. 17. 02:40

 

 이 규 리

 

 

 

 

날마다 누가 전화를 걸었다가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섬 하나 보인다)

 

 

그 사이 잠깐 동안 그와 내가 공유하는 긴장 속에 꽃잎 같은 숨소리 지나갔다 (섬에 닿는다)

 

 

상상은 재빨리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길을 내지만 말하지 못하는 저 사람 (섬에 갇힌다)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저 사람 (섬에서 운다)

 

 

익명을 요구하는 사람의 슬픈 허구를 나는 안다 (섬이 된다)

 

 

마음속에 갈 수 없는 섬 하나 만들어 놓고 발목이 시린 물결들의 수심은 진보랏빛 용담이다 (섬은 사라진다)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세계사(2004)

 

 

 

 나의 섬 하나 보인다,

 그 섬에 이미 닿았다.

 2004년의 그 섬에 갇힌다.

 섬에서 울지는 않는다, 웃는다.

 그곳은 여전히 나의 섬이다.

 가라앉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

 영원한 나의 섬이다.

(2004년 9월 2일, 가을의 길목에서 "영풍문고"라는 시집에 적힌 메모 속에서- 초록여신의 잊었던 섬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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