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발생
최 금 진
별과 별이 봉화처럼 연결되어 별자리를 만들고
어둠의 보이지 않는 샛길까지 환하게 잇고자 했던
지혜로운 여행자들의 지도가
훗날 소설의 기원을 이루었을 것이다
누가 처음 이 외딴곳에 와서 들꽃과 바람을 읽고
거기에 밑줄을 긋고
제 살과 뼈로 써내려간 집 한 채를 지었을까
화순 최씨 집성촌이 있다는
외딴 마을 어딘가를 내가 헤매고 있었을 때
그 후손들 중 하나가 연줄처럼 아득히 풀려나가
바람 부는 허공을 헤매고 있을 때
땡감처럼 매달린 별 몇개로도 제 아비를 읽는 밤
하늘과 땅은 책의 앞뒤 표지처럼 맞물려 있고
깨알 같은 인간의 이야기는 거기서 만들어진다
아버지의 무모한 여행담이
훗날 더 먼 데까지 나갔다 올 아들의 지도가 되듯
나 또한 오래오래 들려줄
뼈까지 닳은 내 역마를 생각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읽어야 한다고
내 나이 무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를
나는 책망하듯 그리워했다, 그리고
근처 어딘가에 화순 최씨 집성촌이 있다는
불 꺼진 밤하늘을 펼쳐놓고 나는 몇번이고
어둠이 만든 행간의 의미를 되풀이해서 읽었다
* 황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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