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를 씹어 먹어봐도 내 콧구멍
냄새를 맡을 수 없어 절망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불면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에
한 시간 꼭 낮잠을 자줘야 하는
나는 어쩌면
수요일이 오면 오천 원에서 육천 원
사이의 가난한 꽃다발을 고집하는
나는 어쩌면
백합꽃의 봉우리가 조금이라도 열리면
거기에 코를 대고 킁킁대고 있는
나는 어쩌면
시인의 변태일지도 모르는
나는 어쩌면
그러나 이 넓디넓은 광화문에선 누가
시인인지 아무도 모르니 내가 시인의
변태일지도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귀와 코 중 어떤 것이 더 길어져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도 없는 셈이니
어쩌나 나는
*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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