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낱장의 시간들 [유희경]

초록여신 2011. 8. 12. 11:10

 

 

 

 

 

 

 

 

 

 한낮의 태양이 가득했다 산책이 시작되었다 너는 저음의 걸음을 이끌고 그곳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고개 숙인 잎사귀들 하나가 너를 향해 떨어졌을 것이다 너는 진심으로 목이 말랐을 것이다 노래처럼, 너는 잘못되었다 아무도 없었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곳은 네가 찾아갈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7월을 흐르는 바람은 잔인하다 어떤 것들은 그냥 떠내려오기도 한다 너는 선량한 의지를 벗어버리고 야윈 두 팔을 드러내었을 것이다 눈물을 참는 얼굴처럼 멈춘 채 흔들리는 두 팔을,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그깨 너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사막, 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깊은 밤의 처지를 감췄을 때도 너는 걷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어떤 영혼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은 대개 그러하다 묻을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그런 법이다 그날 밤은 떠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낱장의 시간들이 날려 오고 손끝의 힘이 풀려나갈 때 오후의 개가 너를 따라온다 너는 개의 미간을 쓰다듬고, 목덜미를 쥐어준 다음 개가 이끄는 시간을 따라 걸어 내려갔을 것이다 언덕 아래엔 푸른 바다가 있다고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돌아보는 개에게 너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했을까 그런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너의 헐벗은 두 팔이 검게 타오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바다의 냄새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파도의 소리가 멀리 들렸고 그때 너는 잠시 태양 쪽을 올려봤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검게 변하는 순간에 아무것도 없고 너만 있고 멀리 오후의 개가 짖는 소리 정말 버리고 떠난 것일까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너는 언덕을 따라 내려갔고 잠시 뒤를 돌아보는 척했지만 그뿐 그 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발 한 짝을 물고 돌아온 개가 한 마리 있었지만, 그 개가 오후의 개였는지 그보다는 좀더 검은 개였는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지금은 그저 假定의 시간 이제 사람들은 창문의 한 귀퉁이를 발견할 것이다 언제 묻었는지 모를 붉고 선연한 자국이 사람의 모습 같아서 그들은 한동안 소곤댈 것이다 누군가는 시간과 함께 몰래 기록해둘 그 소문 속 이야기를

 

 

 

* 오늘 아침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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