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메밀꽃이 인다는 말 [조용미]

초록여신 2011. 8. 11. 11:23

 

 

 

 

 

 

 

 

메밀꽃이 인다는 말 아는지요

바닷가 사람들의 오랜 말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어부들은 메밀꽃이라 부릅니다

흰 거품을 일으키는 물보라를 메밀꽃이 인다 하는데

그 꽃은 피는 게 아니라 이는 거예요

피는 꽃이 스러지는 꽃을 알 수 있을까요 지는 꽃이 일어나는 꽃을 숨 쉴 수 있을까요

 

 

먼 파도에서 일어나는 물거품을 나도 이 순간부터 메밀꽃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잠에서 일어나고 연기가 일어나는,

먼지가 일어나고 두통이 일어나는,

아지랑이가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는,

불꽃이 일어나고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일어나고 일어나 스러지고 또 스러져 다시 일어나는

그 꽃을 당신은 벌써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은 어떤가요

메밀꽃처럼 흰 거품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스러지고 또 스러지는 이 마음 참 오래되었지요

그저 메밀꽃이 피고 졌다 말할 밖에요

북쪽으로, 매서운 메밀꽃이 이는 한겨울의 바다로 가만히 당신을 보러갑니다

 

 

 

* 기억의 행성 / 문학과 지성사,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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