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억새를 배경으로 한 수첩 [김규린]

초록여신 2011. 4. 6. 09:50

 

 

 

 

 

 

 

 

 

 

1

아침이면

삶 속에서 삐쳐나온 실밥들이

유난히 커보인다

안개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치의 절망을 가늠하는 긴 손가락 끝에

계절이 고인다 참아온 가슴 끝에

물빛 든다

나는

물빛 검은 꽃을 채운다

 

 

2

나만 빠진

모종의 윤색된 잔치 속에

우표처럼 너덜너덜 떨어지지 않는

운명아

날 규정지으려 하지 마라

급류에 찢겨

흐르는 어린 낙엽처럼

헝클어진 채

물살 벗어나 있으리

 

 

3

꽃이되 꽃이 아니며

꽃 아니되 꽃인 것

무수히 가시에 찔린 추억 속에
억새가 부른 계절이 머물곤 한다

나, 억새에게서

벼랑에 서는 법을 배웠다

이 작은 방책을 얻기까지 고스란히 바친

반생애였다

 

 

 

* 열꽃 공희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서 [김규린]  (0) 2011.04.07
사랑의 미안 [이영광]  (0) 2011.04.07
녹색 [이영광]  (0) 2011.04.06
(미치겠네) …… 함성호  (0) 2011.04.04
마흔, 바라보다 [김규린]  (0) 2011.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