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초록여신 2011. 2. 28. 10:41

 

 

 

 

 

 

 

 

 

 

오래 굶주린 사제떼가 무리 지어 사냥에 나서듯

마른 땅에 갈기를 흩날리며 들불이 번진다

그곳에서도 물웅덩이를 찾아낸 코끼리 한 마리

느릿느릿 온몸에 검붉은 진흙을 바른 채

무겁고 차갑게 타오르는 황혼을 기다리고 있다

말라죽은 아카시아나무숲과 흰 구름 너머

수 킬로미터 떨어진 또다른 무리와

젊은 수컷들을 찾아서

코끼리는 멀리 울음소리를 낸다

팽팽한 공기 속으로 더욱 멀리 울려퍼지는 말들

너무 낮아 내겐 들리지 않는

초저음파 십이 헤르츠

비밀처럼 이 세상엔 도저히 내게 닿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이 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오래고 오래되었으면

그 부르는 소리마저 이젠 들리지 않게 된 걸까

나무껍질과 마른 덤불로 몇해를 살아온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귀가 작고 딱딱하지만

들을 수 없는 말들은 먼저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울리는 누군가의 떨림을

내 몸으로서만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물녘이면 마른 바닥에 먼 발걸음 소리 울려온다

 

 

 

* 코끼리 주파수 / 창비, 2011,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