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처구니가 산다 [천양희]

초록여신 2011. 2. 4. 02:25

 

 

 

 

 

 

 

 

 

나 먹자고 쌀을 씻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꽃 다 지니까

세상의 삼고(三苦)가

그야말로 시들시들합니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잘못 다 뉘우치니까

세상의 삼독(三毒)이

그야말로 욱신욱신합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욕심 다 버리니까

세상의 삼충(三蟲)이

그야말로 우글우글합니다

 

 

오늘밤

전갈자리별 하늘에

여름이 왔음을 알립니다

 

 

 

*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