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닫힌다는 것 [김은숙]

초록여신 2010. 12. 19. 08:32

 

 

 

 

 

 

 

 

 

 

 

 

심장에서 가장 먼

보이지 않는 정처에 마음 기울여진다

내 몸이거나 내 몸 안에 키우는 것이면서도

일상의 사소함으로 잊은 듯 지내온

분명 내 몸의 또 하나의 근원일 소중한 뿌리에

처음으로 마을 길 낸다

 

 

한 여자의 몸으로 온전했을 때는

너무도 당연해 단 한 번 애틋하게 마음 두지 않다가

별 것 아닐 것으로 여겼던 여자로서의 몸도

이제 닫히고 있다는 생각에 처음 마음 기울이게 되니

 

 

몸이 닫힌다는 것은

한쪽으론 또 다른 마음이 열리는 것이니

일상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묻혀진 것들에

눈과 마음이 더 깊숙이 기울여지고

그래도 아직 조금은 남아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날들 많아지니

 

 

닫힌다는 것은

내 생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내 몸에 매달려 있던

애착과 욕망의 무수한 잎들도 하나 둘 떨어져서

저 바닥 가장 낮은 곳에 순하게 스며들어

또 다른 뿌리의 힘으로 돌아가리니

 

 

하루하루 열어간다고 여긴 날들이

어느새 조금씩 몸을 닫고 생을 닫으며

하나 둘 털어내고 비워지는 만큼

마음은 하루하루 공기처럼 가벼워져

저 대지의 순한 숨결이 받아줄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니

 

 

 

 

*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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