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外界

시인은 '장식'이 아니다 / 강인한

초록여신 2010. 7. 5. 06:35

 

 

시인은 '장식'이 아니다   

 

               강인한

 

 

  시인 2만 명. 어떻게 산출된 수치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소문이 자조적으로 들리는 게 나의 실감입니다. 귀한 존재란 흔한 것이 아닐 때 그 가치를 나타내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명함의 성명 앞에 '시인'이라는 모자 하나를 더 얹어 쓰는 경우도 어줍잖게 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건 마치 시인 아닌 사람이 시인이라고 대접해 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릇 가짜일수록 조잡한 이력이 수다스럽지요. 특히 책에서 저자의 약력이 장황할수록 나는 그 책의 진실을 의심합니다. 

  장로(長老)란 '나이가 많고 학문과 덕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단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고 하여 장로 대접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요즘 직장을 그만둔 뒤 취미로 사군자나 치고 시를 끄적이며 회갑 넘어 야릇한 사이비 문예지로 등단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이비 문예지로 등단한 그들에게 '시인'은 그럴싸하고 멋진 한 개 장식에 불과합니다.

  몇 해 전 내 시집을 읽은 시우가 "나이 들면 사람만 늙는 게 아니라, 시도 늙는구나." 하는 말을 하기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등단한 지 사십 년도 넘었지만 지금이 내 시의 생명이 가장 위험한 시기가 아닌가, 이렇게 마냥 나이 들었음을 은근히 즐기며 받아들인다면 허울 좋은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정년이 없습니다. 나는 진정한 '젊은'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재기발랄한 젊은 시인의 시집도 사서 열심히 읽어보고, 좋은 시는 날마다 내 손으로 직접 베껴 써보기도 합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젊은' 시인은 시집이나 문예지를 열심히 사 읽는 이이고, 시인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이는 시집이건 문예지건 잘 사 읽지 않는 이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한국시인협회는 '젊은' 시인들의 모임이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국시인협회, 소식지 22호 원고)

 

 

 

* 출처: 푸른 시의 방, <강인한의 산문>에서 복사해왔습니다. 고맙습니다.

 

 

……

'시는' 악세사리가 아니라고 하던 노 시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분명 귀걸이나 목걸이처럼 악세사리가 아니고 '시인' 또한  장식이 아니지요.

'시를 읽는 자' 또한 우아한 짓거리가 아님을 알았으면 합니다.

 

'시'가 단지 내 삶을 조금은 느슨하게 가도록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