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왼손의 쓸모 [김나영]

초록여신 2010. 6. 8. 05:27

 

 

 

 

 

 

 

 

 

보통 때는 잘 모른다.

 

땅에 돈 떨어진 것 발견했을 때

내가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 놓을 때

참다 참다 말 안 듣는 자식 등짝 몇 대 후려칠 때

망설일 것 없이 왼손이 스프링처럼 확 튀어나간다.

 

아버지 앞에서 오른손 부들부들 떨며 숟가락질 배운 탓에

ㄱ, ㄴ, ㄷ, … 오른손 덜덜 떨며 완곡하게 구부려 쓴 탓에

지금은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오른손으로 밥 먹고 살지만

 

위기가 닥칠 때 맨손으로 버티는 것이 왼손의 근성이다.

유년 시절 한 봉지의 과자를 훔치던 손이 성공했더라면

어느 하산 길 왼손이 나무뿌리 부여잡고 피 흘려주지 않았더라면

내 생의 지도는 극도로 우회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른손은 왼손의 쓸모를 수시로 빌려 쓰고 있다.

바느질 할 때, 돈 셀 때, 생선 지느러미 가위질 할 때, 친정 이불장 사이에 봉투 찔러놓고 올 때

왼손이라야 더 날렵하게 끝을 낸다.

상처의 칼집인 왼손이

생활의 현장 속으로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십 년 넘게 교육 한번 받지 않은 왼손이.

 

 

* 왼손의 쓸모, 천년의 시작(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