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外界

소년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김은경]

초록여신 2010. 3. 5. 20:19

 

소년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김은경 (시인, 한국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 위원장)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기금의 대가로 한국작가회의에게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작가회의는 이에 불응함은 물론이고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반문화적 행정 폭력에 모든 저항 수단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보내온 확인서는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본 단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 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에 서명을 하는 경우에만 보조금 3,400만원을 집행하겠다는 말이다.

비단 작가회의만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띤 단체들에 이런 일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예진흥기금이 정부 눈에 든 아이에게 던져주는 한낱 사탕 쪼가리인가? 항복문서 쓰고 반정부 시위 안 하면 사탕을 주겠다고? 하아! 돈으로 작가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저들의 오만한 발상에 ‘썩소’가 절로 터져 나온다. 유치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지난 1월 한국작가회의에서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클레어 킬로이를 초청,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치렀다. 클레어 킬로이는 예술과 집념에 관한 3부작 소설을 집필한 젊은 작가다.

때마침 그가 한국 작가들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클레어 킬로이는 “아일랜드에선 작가 개인이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문인단체 활동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런데 한국작가회의는 그 역사가 상당히 길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로 이러한 단체가 존속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우리는 한국이라는 공간에서의 문학 활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작가회의는 1970년대 유신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며 태동했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으며 반민주․반자유 시대와의 불화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 비판정신을 문학 속에 투영시켜 온 단체이다. 한국은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며, 광우병 소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불법시위로 규정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이니 미디어법이니 하며 시시콜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아직 갈 길이 먼 나라다. 한국사의 험난한 굴곡 안에서 작가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작가(作家)란 무엇인가? 적어도 작가는 시대의 양심을 쓰고, 역사를 쓰고, 자신의 상처를, 더불어 누군가의 상처를 함께 쓰는 사람이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황무지’로 상징화해 시로 썼고,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소설 『25시』를 통해 미·소 양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묘사하며 기계주의적 전체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리고 우리의 시인 김수영은 또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시는 나쁜 시만이 가슴에 / 남는다 / 손톱 위에 태양을 그려 보아라 / 좋은 시와 나쁜 시의 / 분간이 될 터이니 / 반항하는 마음을 배우게 될 터이니 / 바람이 부는 데서 잠을 자거라 / 호화로운 꿈이라도 꾸기 위해서는” (「시」, 1957년 作)

그래. 바람이 부는 데서 잠을 자는 자, 그가 바로 시인 아니던가.

 

끝으로 빌 오거스트 감독의 영화 「정복자 펠레」 얘기를 해야겠다.

19세기 말 가난과 비참한 생활을 떨치고자 10세 소년 펠레와 아버지 라튼은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건너온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도 그들의 가난은 계속되고, 아버지는 간신히 콘스트립 목장에 취직한다. 하루하루 목장에서 힘겨운 노동과 함께 더럽고 비굴한 세상살이의 뒷면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펠레는 조금씩 성장해 가며, 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상태. 결국 펠레는 아버지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넓은 세계를 배우기 위해 홀로 먼 길을 떠난다.

 

내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계속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새 훌쩍 자란 펠레가 헤어지기 직전 아버지와 악수하는 장면. 글썽임도 없이 당당하게 미지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펠레. 펠레는 목장에서 더럽고 비굴한 세상살이의 뒷면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말았지만 자기를 괴롭히려 드는 어떤 대상에게도 굴하거나 정복당하지 않았다. 길을 떠나는 펠레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래, 순결한 영혼은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아. 그리고 누구도 정복하려 하지 않아. 오로지 저 자신에게 이기거나 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야.’라고 읊조렸던 것 같다.

 

주인공 펠레의 바람과는 달리 어쩌면 소년의 계절 안에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나 소년은 누구보다도 위풍당당하게 두 발로 봄을 찾으러 떠난다. 설사 더 춥고 더 가난한 시간들이 길에 부려져 있을지라도 스스로 선택했기에,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았기에 펠레의 인생은 아름답다. 그 인생, 오로지 자기 것이다.

 

이번 문화예술위원회의 서명서 파문과 함께 MB 정권과의 전면전을 선언한 작가회의는 앞으로 더 가난해질지 모르겠다. 더 추워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국작가회의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이 취임 인터뷰에서 “좋은 언어를 통해 비인간화된 현실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작업이 문학인들과 한국작가회의의 소명이자 책임”이라고 말한 것처럼, 영원한 소년인 작가들은 결코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제는 문학활동, 예술활동마저 통제하고 탄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시위불참확인 요구서'를 거부하고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벌이는 한국작가회의의 실천을 지지합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민우칼럼 64호>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 동참하고자 복사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