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의 중심에 벌레들을 기르는 귀목나무 아래에서
아프다는 것이 축복임을 안다
앓는다는 것은 내 안에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
아픈 몸은 홑몸이 아니라는 것
잎 돋는 귀목나무 바람과 노는 걸 보며 알았다
순과 꽃 우거진 봄 언덕은 팔만대장경
오래 동무한 병과 함께 누워
묵언의 말씀들 그 향헤 취한 채
달몸살을 앓는다는 한 스승을 생각했다
어느새 바닷물이 몸으로 들고 나서
바다와 함께 화를 내고 바다와 함께 쓸쓸해진다는 그
그는 나보다 오래 앓아서 우주와 한 호흡이 되었으리라
내 안에 이는 바람에 툭 하고 잎이 돋는다
누군가 나에게 병에 대해 묻는다면
앓으며 살아가며 한 호흡이 되는 것이라고
죽을 만큼 아프면서 끝내 사랑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 귀가 서럽다, 창비(2009.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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