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먹물 방울 떨어뜨려놓고 눈 꼭 감고 백지에 먹물 번지는 소리를 듣는 아침에 아침 안개에 풀리는 여백에는 첫 빛이 닿은 아침부터
너와 내가
그사이 살이 묽어지며 묽은 살이 묽은 살에 섞이며 온몸이 고루 묽어지는 저녁까지 살 속으로 어스름 내리며 어스름 속으로는 어둠이 내리며 물 젖는 듯 번지는 저녁에
너와 내가
너는 나의 어깨에 나는 너의 어깨에 손 얹고 너와 나의 어깨 너머를 넘겨다보는 너의 어깨 너머에는 별이 떴는지 나의 어깨 너머는 아직 캄캄한지 너도 나도 말 없는
너와 내가
마주 서서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소리 내지 않고 이름 부르는 너와 나 사이에 부르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소리 없이 번지는 때에
너와 나의
꼭 감은 눈시울 밖으로 자라나는 꼭 감긴 눈시울 그늘인 것 닳고 벌어진 손톱 밑에서 자라나는 닳고 벌어진 손톱 그림자인 것
* 두근거리다 / 문학과 지성사, 201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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