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뒷모습 [이병률]

초록여신 2010. 1. 19. 09:39

 

 

 

 

 

 

 

 

 

 

 

왜 추운 데 서서 돌아가지 않는가

돌아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끝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쌀로 쌀에서 고요로 사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구덩이가 많아

그 차가운 존재들을 뛰어넘고 넘어서만 돌아가려 하는 것인가

추워지려는 것이다

 

 

지난봄 자고 일어난 자리에 가득 진 목련꽃잎들을 생각한 생각들이

눈길에 찍힌 작은 목숨들의 발자국이

발자국에서 빗방울로 빗방울에서 우주의 침묵으로

한통속으로 엉겨들어, 조그맣게 얼룩이라도 되어

이 천지간의 물결들을 최선들을 비벼대서

숨결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아, 돌아온다는 당신과 떠난 당신은 같은 온도인가

그사이 온통 가득한 허공을 밟고 뒤편의 뒷맛을 밟더라도

하나를 두고 하나를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한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나침반처럼

눈부시게 눈부시게 떨리는 뒷모습에게

그러니 벌거벗고 서 있는 뒷모습에게

왜 그리 한없이 서 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 바람의 사생활, 창비(2006)

 

 

.......

뒷모습을 보인 자만이 그 뒷모습의 애절함을 알 것이다.

떠남과 남음의 그 작은 틈새에 살짝 내보이는 어쩌면 경건한 등의 모습이리라.

떨리는 뒷모습에게 떨림을 잠재울 수 없듯이

뒷모습을 보이는 그 등에게 앞모습을 보여달라 할 수 없음은

이미 그 식어버린 온도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돌아온다는 당신과 떠난 당신은 같은 온도일까?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자, 뒷모습만은 아끼고 또 아꼈으면 좋겠다.

(한없이 서 있을 뒷모습에,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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