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가 먼 슬픔은 적색변이의 꽁무니를 가졌다
눈물을 흩뿌리며 쏜살처럼 멀어지는 별들ㅡ
죽은 사람들이 가끔씩 잠 속에 찾아왔다
표면장력 안에서 어머니가 둥글게 울었다
물과 불로 얼룩진 한 가문의 내력을 얼핏 보았다
서슴없이 한 생을 받아들인 꽃들이 발빝에 분분하였다
길은 안 보이는 쪽으로만 휘어졌고
부지런히 안으로 걸었으나 바깥에 다다랐다
어둠이 빛의 틈새마다 알을 슬어 놓았다
발 달린 것들이 모든 방향으로 흩어졌다
난생은 태생을 외면했고, 나는 알에서 태어나고 싶었다
바람과 허기의 문장을 따라 기억은 다만 지금, 여기에 도착할 뿐
시간과 원주율의 관습에 비스듬히 불화하였다
어떤 중심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언젠가는'이라고 믿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지른 자의 잘못에 동의하였다
안과 밖 겉과 속 만남과 이별 원인과 결과 따위의
말들이 나와 너 하나 차이로 대립했으나
짚어 보면 맨 한 줄기인 뿌리에 대해 어렴풋이 용서했다
눈은 끈질기게 대칭을 섬겼고 아름다움을 차별했다
아름다움의 표정은 태어나기 전부터 학습되었다
그녀의 가지런한 이목구비에 무수한 눈目 화살이 꽂혔다
전쟁의 명분이었고, 사각四角의 화면에 소문이 들끓었다
반성으로 얼룩진 일기장은 대개 나무의 상징에 바쳐졌다
가장 이기적으로 나 나 나, 나무는 아름다웠다
절경絶境은 수평에 몇 개의 수직을 세워 놓는 게 고작이었다
가지런하지 않은 것들은 자꾸만 한쪽으로 쏠렸다
살아 있는 자들이 자신의 발언에 열중하는 사이
역사는 서둘러 기승전결의 거짓을 부여했다
'언젠가는' 실현되고 말 불후의 예언들이 입도선매되었다
무심한 일상의 근육들은 발굴되는 체위로 퇴적되었다
빛에서 나왔으나 색은 빛으로 하여 바래 갔다
가끔 가눌 수 없는 길이 몇 타래씩 쏟아지고
잊을 만하면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는 거울을 꺼내 들었다
정신은 부지런히 시간을 거슬러 자전했지만 정작
공전하는 몸의 궤도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질문과 대답에 능통한 아이들이 공의 바깥에서 공을 차며 놀았다
저녁이면 한 방향으로 굽은 등들이
저질러진 손手을 한 아름씩 품고 돌아왔다
둘러보니 혼자였고 혼자가 아니기도 하였다
불화의 정원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가득하였다
* 제9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우수추천시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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