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산, 무거운 회색빛 하늘, 초옥에서 창을 열어두고 피리를 불며 앉아 있는 선비의 시선은 먼 데 창밖을 향하고 있다.
어둑한 개울에 놓인 다리를 밟고 건너오는 사내는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있다
멀리서 산속에 있는 벗을 찾아오고 있다 방 안의 선비는 녹의를 그는 홍의를 입고 있다
초옥을 에워싸고 매화는 눈송이가 내려앉듯 환하고 아득하다
매화를 찾아, 마음으로 친히 지내는 벗을 찾아 봄이 오기 전의 산중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생겨나고, 부유하고, 바람의 기운 따라 천지간을 운행하는 별처럼 저 점점이 떠 있는 흰 매화에서
우주의 어느 한 순간이 멈추어버린 것을, 거문고를 메고 가는 한 사내를 통해 나가 보았다면
눈 덮인 산은 광막하고 골짜기는 유현하여 그 속에 든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아득하구나
천리 밖 은은하게 번지는 서늘한 향을 듣는 이는 오직 그대뿐
밤하늘의 성성한 별들이 지듯 매화가 한 잎 한 잎 흩어지는 봄밤, 천지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나는 그림 속 사람이 된다 별빛이 멀리서 오듯 암향도 가깝지 않다
* 2010 제55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 수상 후보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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