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저수지에 비친 시 [박주택]

초록여신 2009. 11. 29. 10:19

 

 

 

 

 

 

 

 

 

 

 

오래 살던 곳을 되짚는 일이란

잠든 망각을 그리움으로 완성시키는 것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이 싸우며 나지막하게 떠는 것

지붕이 타오르고 있었다

저곳이 원적이란 말인가

지문이며 우물이며 교회며 발자국 뒤로 저벅여오는

온갖 것들의 귀(鬼)스러움이며 순간적이지만 자루에 묶여 있는 숨들

 

 

뿌리를 만질 때 굴뚝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본다

푸른 눈동자였다 그때는 무엇이 숲 사이로 오는가

빛이 흐려지고 돌아오는 것들의 산발치에서

후루룩 여우가 일어서는데

발목부터 뻗어 오르는 관목이 있다면

탄식부터 멸망시켰어야 하리라

산중에 도사리고 있는 뱀과 같이 노을은 저물고

저녁을 덮는 물은 교회의 망루에서

저수지에서 서성대는 숨을 향해

계명을 외우라며 비명을 지른다

 

 

 

 

* 시간의 동공, 문학과 지성사(20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