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만나 [정영선]

초록여신 2009. 10. 16. 07:06

 

 

 

 

 

 

 

 

 

 

 

 

붉은바다참게

그는 죽어서도 위협적이다

맞물린 집게다리는

파도가 다 빠져나간

바다를 물고 놓지 않는다

밍밍한 허공을 공허로 펼치지 않는다

흘끔흘끔 세상을 경계하던 눈은

가지 못한 길을 하나 가득 담고 있다

 

 

개다리상에 앉아

게다리 먹는 법을 배운다

꿈을 버둥이던 뼈마디를 요령 있게 꺾으면

연하디연한 속살이 저항 없이 드러난다

여전히 위협적인 수북이 쌓인 껍데기들 사이로

두터운 방어벽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마음을 본다

바람 갈기에 그대로 휘날릴 것 같아 위태롭다

갑각류가 되어

세상 등 껍질에 쓸리지 않으려는

연한 속마음이 뭉클 씹혀진다

 

 

 

 

*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