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와 폐가가 정의하는 마을을
나는 투기꾼의 시선으로 마악 통과해왔다
거기 집 한 채 들이고도 싶었으나
모퉁이를 돌면서 다시 보니
마을은 아슬아슬하게 산비탈에 걸쳐 있었다
나야 지나가는 자의 낭만에 불과하지만
코끝에 걸린 몇 점 연기가 문득 매웠던가
깨진 사기그릇 속의 흙탕물처럼
마을은 그렇게 겨우 마을에 고여 있었다
나는 텅 빈 페트병을 걷어차면서
한때 농약이 들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저만치 날려간 비닐하우스의 잔해가
다시 돌아와 거적 더미처럼 마을을 덮는다면
누가 들추어보며 혀라도 차줄 것인가
떠돌 곳 다 떠돈 뒤 물방개처럼
제 집을 찾아들게 할 것인가
나야 지나가는 자의 객기에 불과하지만
돌아보면 마을은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어설픈 연민을 마구 쫓아내고 있었다
*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문학동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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