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서야
떠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홀로 떠나는 법을
마음의 빚이건 물질의 빚이건
뗄래야 뗄 수 없는 내 몸뚱이 비곗덩어리처럼
살수록 느는 건 빚이라
이사할 대마다 알게 모르게 늘어나는 짐들
박스 하나로 시작했던 타지에서의 삶이
트럭을 한 대 이상 불러야 할 정도로 나이를 먹어
누구나가 땅에 두 발 붙이고 살긴 하지만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내가 딛고 있는 두 발 왔다 갔다 하는 거리
이어진 선 안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점차 그 테두리 안으로 발목 잡혀 뿌리를 내리고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희망도 절망도 가슴에 묻어버리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가볍게 일어나서 뽀지게 놀다가 저녁엔 삭신이 욱신거려도 좋다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 하나만 있으면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까
나만 한 가방 하나와 내가 앉아 있으니
짐인지 가방인지 사람인지 경계가 없어져
동그란 덩어리 두 개 나란히 있는데
무엇을 버려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 반성하다 그만둔 날, 실천문학사(2008)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눈이지옥사촌나비 [김남호] (0) | 2009.10.05 |
---|---|
퇴행성관절염 [박후기] (0) | 2009.10.05 |
물오른 길 [김사이] (0) | 2009.10.04 |
기다리는 게 뭔지도 모르고 기다리는 [김사이] (0) | 2009.10.04 |
회상 [고은] (0) | 2009.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