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치통을 앓는 그림엽서 [김남호]

초록여신 2009. 9. 20. 15:10

 

 

 

 

 

 

 

 

 

 

 

 그녀가 보낸 이 그림엽서를 번역하느라 치통을 앓고 있다. 난해한 것을 만나면 깨물어보는 버릇 때문이다. 송곳니를 박아도 이빨만 쩌릿하게 시려올 뿐 딱딱한 이 그림은 좀체 균열이 가지 않는다. 맛을 보지 말고 턱뼈를 탈골시켜서 뱀처럼 통째로 삼키느라 그녀는 엽서에 적어 보냈다. 목구멍을 찢고 몸 전체를 식도로 삼아 꿀꺽, 넘기면 식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괄약근이 불꽃놀이 하듯 뜨거운 꽃을 피울 거라고 했다. 내 담담의사는 이 그림을 보는 동안은 술 담배를 줄이고 항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는 격렬한 성행위를 삼가라고 주문했다. 나는 술 담배를 줄이거나 격렬한 성행위를 삼가는 대신 차라리 이 그림의 번역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녀에게서 회신이 왔다.

 

 

 당신 턱뼈는 내가 갖고 있으니 그냥 삼키세요!

 

 

 

 

 

* 링 위의 돼지, 천년의 시작 (20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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