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뉴튼에게 경의를 표함* [김남호]

초록여신 2009. 9. 12. 22:20

 

 

 

 

 

 

 

 

 

 

벌레 먹은 사과 한 개 떨어진다

이제 온전히 벌레의 것이다

누구에게도 사과할 필요는 없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지구를 돌리고 있다

 

 

식육점 주인은 죽은 돼지의

불알과 쓸개를 나란히 내걸어 놓고

불알 없는 쓸개와 쓸개 없는 불알의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있다

 

 

지구를 한 바퀴 다 돌리려면 아직도

삼겹살 열두 판은 더 구워야 한다

 

 

뭉텅뭉텅 썩은 사과를 낳은 여학생들이

산부인과에서 쏟아져 나온다

산후에는 돼지족발 같은 게 좋대요!

족발 같은 게 치마 밑으로 자꾸 발을 밀어 넣고 있어요

 

 

치마 밑으로 풋사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뉴튼은 오늘도

저놈의 풋사과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지구가 사과나무 아래서 오리걸음으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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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의 조각

 

 

 

* 링 위의 돼지 / 천년의 시작, 2009. 9. 10.

 

 

 

  자산과 부채가 나란히 기입되듯이 "불알"과 "쓸개"는 "식육점"의 옆자리에 있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물, "불알"과 "쓸개"는 정당한 사용가치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없는 두 사물이 타자에 의해 각자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불알 없는 쓸개"와 "쓸개 없는 불알"은 '불알 있는 쓸개'와 '쓸개 없는 불알'에 의해 거짓ㅡ유사가 된다. 이처럼 부재와 결핍이 만드는 왜상이 존재를 증명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김남호의 시는 결핍과 왜상이 이 세계의 거부할 수 없는 실상임을 말한다.

ㅡ 여태천(시인.동덕여대 교수), [해설] 삶과 죽음에 관한 오해와 진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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