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오이도 [오채운]

초록여신 2009. 6. 27. 23:42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일탈

오이도에 가네

참외도엔 안 가니?

수박도엔 안 가니?

친구들은 가벼운 말장난으로 놀려댔지만

이 기차의 종착역은 오이도

무엇이든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섬은 없고 바다도 없는 곳

폐허의 쓰레기장이나

한겨울의 공사장을 떠올리며

오이도에 가네

길을 찾지 못하네

세찬 바람이 불어오네

떨어져나갈 것 같은 귀

바람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 귀를 자르네

아아 나의 귀, 까마귀의 귀가 잘려나가네

오이도가 보이지 않네 오이도를 찾지 못하네

어둠에 묻혀 힘없이 돌아서네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무작정 입석버스에 오르네

지붕이 낮은 집들 사이의 골목을

비스는 허덕거리며 지나가네

어둠 속에서 입석버스 불빛에

수줍게 몸을 내미는 회색 담벼락들과

지붕 낮은 집들의 조용한 열병식

그래, 오이도

누구나 한 번 꿈꿀 수 있는 일탈

까마귀의 귀를 달고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곳

잊어야할 아픔들이 아직 생기기 전인

태아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곳

버스는 양수를 헤엄쳐가네

어른이 되어버린 낡은 내 속에 숨어 있는

그 골목의 수줍은 오이도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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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운

1964년 전북 김제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2004년 『동서문학』등단.

저서로는 『현대시와 신체의 은유』가 있다.

 

 

 

 

* 모래를 먹고 자라는 나무 / 천년의시작, 2009.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