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노 전 대통령 추모 광고 29일치 <경향신문> 하단광고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 안도현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낯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바보 노무현!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맑은 눈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만나렵니다.
가시는 길 쓸쓸하지 않게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 29일치 <한겨레>, <경향신문>에 실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전면광고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은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 김진경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상식 그 국민에 못 배우고 힘없는 이들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상식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는가?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상식 물러나면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상식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는가?
법이 모든 국민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상식 법이 파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선 안 된다는 상식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는가?
당신은 늘 불편한 노무현이었습니다.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당신 자신과 우리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늘 외로운 노무현이었습니다.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편리함을 위해 너무도 쉽게 저버리는 우리들 속에서 당신은 늘 바보 노무현이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운명적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상식 그 국민에 못 배우고 힘없는 이들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상식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늘 두려운 노무현이었습니다.
잘 나고 힘 있는 소수가 사실상 모든 걸 결정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늘 당신의 존재를 두려워했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작고 하찮은 상식을 끝까지 품고 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헛된 희망은 품지 말라고 뙤약볕에 밀짚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평범한 농부 노무현의 모습마저 지우려 했습니다. 아, 그리고 당신을 불편해하는 우리들의 침묵이 마침내 당신을 벼랑 끝에 세우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을 너무도 깊이 사랑했으므로 칼날이 되어 들어오는 법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칼날 앞에서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하여 당신에게 죽음뿐이었습니다. 여기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하여 당신에게 죽음뿐이었습니다.
아, 늘 불편한 노무현! 나태해지는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는 죽비소리로 다시 살아오소서.
아, 늘 외로운 노무현!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위한 싸움이야말로 가장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우리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길로 다시 살아오소서.
아, 바보 노무현!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꽃피는 나라로 다시 살아오소서. 우리들이 반드시 이룰 터이니 그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오소서.
아,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은 정말 이렇게 죽음으로 말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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