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살구꽃 [송찬호]

초록여신 2009. 6. 15. 22:23

 

 

 

 

 

 

 

 

 

 

살구꽃이 잠깐 피었다 졌다

살구꽃 무늬 양산을 활짝 폈다가

사지는 않고

그냥 가격만 물어보고

슬그머니 접어 내려놓듯이

 

 

정말 우리는 살구꽃이 잠깐이라는 걸 안다

봄의 절정인 어느 날

활짝 핀 살구꽃이 벌들과

혼인 비행을 떠나버리면,

 

 

남은 살구나무는 꽃이 없어도

그게 누구네 나무라는 걸 눈을 감고도 훤히 알듯이

재봉틀 소리 나는 곳이 살구나무 수선집이고

종일 망치 소리 나는 곳이 살구나무 철공소라는 걸 멀리서도 알고 있듯이

 

 

살구나무와 연애 한번 하지 않아도

살구나무가 입은 속옷이

연분홍 빤쓰라는 걸

속으로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문학과지성사, 200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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