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궁벽한 곳으로 나를 내몰아
산속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달리다보면 손은 수시로 뿔로 변하고
발굽 아래 무엇이 깨져나가는지도 모른 채
밤길을 달리다 문득 멈추어선 것은
그 눈동자 앞이었다
겁에 질린 초식동물의 눈빛,
길을 잃어버리기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헤드라이트에 놀라 주춤거리다가
도로 위에 쓰러진 노루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저 어리디어린 노루는
산속에 두고 온 스무살의 나인지도,
말없이 사라진 사람인지도,
언젠가 낳아 함부로 버린 사랑인지도 모른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끄고 어둠의 일부가 되어 외쳤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두 개의 뿔과 네 개의 발굽으로
불행의 속도를 추월할 수는 없다 해도
어서 일어나 남은 길을 건너라
저 울창한 달래와 마루 덩굴 속으로 사라져라
누구도 너를 찾아낼 수 없도록
* 야생사과, 창비(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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